[책]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나는 "연구원이면서 회사원"이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살짝 과거를 이야기해야겠다. 학사, 박사, 포닥까지 하면서 어떤 한 분야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연구를 하는 방법을 훈련받은 나로서는 academy에서 industry로 전환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학계의 마지막 커리어 단계인 미국 포닥 생활은 내게는 최악의 경험이었기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와는 비교가 안되는 찐 똑똑한 연구원들, 늘지 않는 영어실력으로 움츠러드는 몸처럼 생각의 행동반경도 줄어들었고, 더 나아가서 따라가는 연구에 익숙한 나의 능력은 가장 프론티어적인 연구를 하는 소속 연구실 포닥 포지션을 감내하지 못했었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학계에 남아야 해와 같은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난 한국의 대기업들이 하는 해외 리크루팅을 통해서 입사를 선택하였다. 자신감이 많이 하락한 나는 회사의 면접 때 포닥 때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면접관에게 내 연구가 당신 회사에 도움이 되냐고 되물었었다. 그 때의 면접장은 나를 재미있는 놈이라 생각했는지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어여 정리하고 들어오라고 말씀을 해주셨었다. 아마도 해외 생활에서 처음으로 인정같은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이 회사로 결정을 내린 듯하다. 회사에 들어와서 한 달간 내가 소속할 곳을 찾다가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인 이론 계산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계산화학팀의 팀장님에게 3번은 찾아가서 어필을 하였었다. 그 팀장님이 임원이 되면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나는 올해는 입사 이래로 가장 바쁘게 보내고 있다. 팀장님이 보호해 줄 때는 포닥과 같이 내 맘대로 연구를 하면서 나의 상태는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연구 조직은 회사의 일부분이기에 회사원으로서 역할도 요구를 하게 된다. 위치가 점점 관리직으로 갈수록 연구원보다 회사원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연구원이면서 회사원인 나는 두 존재가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항상 고민을 한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와이프와의 대화였다. 왜 너 혼자만 그리 바쁘냐!!! 똑똑한 사람들은 놀면서도 성과가 잘 나온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다. 그 말이 내 머리속을 잠깐 스쳐갈때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이 책을 보게 되어 충동적으로 구입을 하게 되었다. 난 단순하지 않게 일하나?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저 책에서 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기 위한 충분 조건들은 무엇이지? 이런 궁금증이 들었었다. 화려한 저자의 필모그래피를 보자니 솔직히 사기꾼 같았지만 뭐 문장 하나라도 마음에 들어오면 좋은 책이니..
완독을 하고 느낀 점은 내가 그리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였다. 저자가 하라는 것을 대부분 준수하고 있었다. (요약해서 두괄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직속상관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때가 가끔 있지만...^^;;;) 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무조건 why가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보고는 두괄식, 사람간의 관계도 적당한 선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나는 이 저자가 말하는 요지를 꽤나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관리 기법은 좀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팀원들에게 공유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 팀원들에게 해야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그래야 다시 시키는 짓을 안한다), 그리고 진행정도를 체계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배울 만 하였다. 흠....그러면 일은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리 바쁜건 해결이 안되지? 와이프의 말씀이었던 똑똑한 사람들은 놀면서도 성과가 잘만 나온다는 그 말의 결론은 나는 똑똑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췟!